순흥안씨 문성공파 우리나라 대표적인 위인들 살펴보는 시간을 준비하였는데 우리나라 성씨 중에서 안씨를 대표하는 위인들이 많이 계십니다.
문헌에서 전하는 안(安)씨 성의 본관은 모두 109본이지만 현존하는 주요 본관은 순흥(順興), 광주(廣州), 안산(安山), 제천(堤川), 죽산(竹山), 탐진(耽津), 태원(太原) 등 41개를 제외하면 나머지 본관은 미상입니다.
1985년 경제기획원에서 실시한 인구조사에 의하면 13만 가구가 넘으며 인구수는 55만이 넘어 우리나라 총 274개 성씨에서 18번째로 많은 성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순흥안씨 문성공파
순흥안씨 문성공파를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나라 안씨 성은 많은 애국 충신과 공신, 효자효부, 의사, 열사, 열녀를 배출하였으며 특히 근대에도 도산 안창호 선생님과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많은 애국 독립투사와 민족의 선구자를 배출하였습니다.
안씨의 시조는 안 자미(安子美)이며 고려 신종 때 흥위위 보승 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지내고, 흥녕(興寧;지금의 경상북도 영풍군 순흥)에 세거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으로 삼았습니다.
시조 안 자미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었는데 큰아들 안영유(安永儒)의 후손들을 1파로, 둘째 아들 안영린(安永麟)의 후손들을 2파로, 셋째 아들 안영화(安永和)의 후손들을 3파로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각파에는 파조(派祖)가 있어 1파는 4세인 문성공 안향이, 2파는 5세인 문의 공 안문개(文懿公安文凱)가 있으며, 3파는 5세인 제학공 안석(提學公安碩)과 6세인 문정공 안축(文貞公安軸)이 있습니다.
순흥안씨 문성공파는 안향선생의 시호가 문성공으로 칭호를 받았으며 그래서 문성공파로 알려져 오는데 순흥 안 씨 제1파 문성공파는 파조급 이상은 유명하신 분들이 많으며 순흥 안 씨는 크게 3종 중 계파로 분류하여 22개(혹은 23개)의 파만 전해지고 있으며 문성공파는 3 종중에 1파로 추밀공 종중 또는 추밀공 파라 불리며 이는 문성공파라고 전해졌습니다.
어려운 한자용어
우리나라 성씨의 시조와 유래를 살펴보고 한자용어를 부득이 사용할 수밖에 없어서 어려운 한자용어를 보충 설명하고자 합니다.
함(銜) :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높여서 함(銜) 또는 명함(名銜)이라 하고, 더 높여 존함(尊銜)이라고 부릅니다.
휘(諱) : 돌아가신 어른의 생전 이름을 휘(諱)라고 부릅니다.
관적 : 시조(始祖)의 고향이라는 뜻으로 본(本). 본관(本貫). 본향. 선향(先鄕)과 같은 뜻을 의미합니다.
의사 : 나라를 위하여 무력(武力)으로써 항거하다가 의롭게 죽은 의인을 부를 때 쓰는 호칭입니다.
열사 : 나라를 위하여 맨몸으로 저항하다가 죽음으로써 높은 지조를 나타낸 의인을 뜻합니다.
공신 : 나라에 특별한 공을 세운 신하를 의미합니다.
대표적 안 씨 성
우리나라 안씨 성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는 안중근 의사, 안창호 선생이 계시며 그밖에 안창호선생의 장남으로 한국계 미국인배우 안필립, 아시아 최초 미해군 포격술 장교로 안창호 선생의 셋째 안수산, 작곡가 안익태 선생, V3 바이러스 창립자 안철수, 국민배우 안성기, 민중가수 안치환 등 많은 인물들이 계십니다.
그리고 참고로 중국에는 낯 안(顔)을 쓰는 안씨 성이 있는데 공자의 제자였던 안회(顔回)와 또 당나라 현종 때 서예가로 유명한 안진경(顔眞卿)의 인물이 있습니다.
광주 안 씨
시조는 안방걸(安邦傑), 본래 이름은 안엽 춘(安葉春)으로 807년(신라 애장왕) 당(唐) 나라에서 건너온 이원(李瑗)의 둘째 아들로, 3형제가 함께 왜구의 노략질을 평정한 큰 공으로 왕이 안 씨를 하사하여 그 뒤 고려 태조 때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으며 후손들이 광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안산 안 씨
시조는 안 자유(安子由)이며 고려 충목왕 때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지냈다고 전해오는데 세계나 본관의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한 자료가 없어서 알 수 없으며 다만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삼고 안산을 본관으로 삼아 이어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新) 죽산 안 씨
시조는 안원형(安元衡)으로 고려 충혜왕 때 문과에 올라 밀직사사(密直司事)를 거쳐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녹훈되어 죽성 군(竹城君)에 봉해졌으며 문혜(文惠)로 시호 되었는데 그의 선계는 광주 안 씨로 시조 안방걸의 17 세손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舊) 죽산 안 씨
시조는 안방준(安邦俊)이며 본래 이름은 안지춘(安枝春)으로 중국 당(唐) 나라에서 건너온 이원의 큰아들로, 신라 경문왕 때 왜구의 노략질을 평정한 공을 인정받아 왕으로부터 안 씨 성을 내려받고 죽산군(竹山君)에 봉해졌으며 그 뒤에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탐진 안 씨
탐진은 강진(康津)의 옛 이름으므로 강진 안씨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시조는 안 원린(安元璘)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고려 충혜왕 1332년 문과에 올라 정당문학 검 교중 추부사(政堂文學檢校中樞府事)에 이르러 탐진 군(耽津君)에 봉해지면서 그의 후손들이 탐진을 관향(貫鄕)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순흥 안 씨의 시조 자미의 7 세손의 3형제 가운데, 첫째 아들 원숭(元崇)은 순흥 안 씨를 계승하고 둘째 아들 원형은 신죽산 안 씨, 막내 아들 원린은 탐진 안 씨의 시조가 되므로 순흥, 신죽산, 탐진 안 씨는 모두 한 시조의 후손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순흥안씨 문성공파 대한민국 대표 성씨 소개를 정리하여 설명하였는데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유용한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며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